-
심리학_심리학자 융심리학 2022. 9. 9. 00:59
스위스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같은 해인 1875년도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85세의 나이로 1961년도 사망한 인물이다. 프로이트, 아들러와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힌다.
어린 시절부터 성격이 상당히 예민했다고 한다. 본인이 두 가지 인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공상가로 오해받을 정도로 심령 현상에 관심이 많았던 융은 본인의 이중적 성격의 원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심리학에서 무관한 신화, 연금술 등에 관한 이론을 만들어서 문제가 보인다는 주장이 있다. 동양의 정신문화에도 많은 관심과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었다. 사춘기에는 목사인 아버지와 많은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장남이였던 융은 21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의 가장이 되었다고 한다. 융은 프로이트의 중요한 동료이자 후계자이나, 아들러와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성욕을 강조하는 것은 반대하여 프로이트를 떠나 분석심리학파를 만들었다. 시계가 유명한 스위스의 한 세계 제조업자의 딸인 엠마 라우셴바흐와 28살 나이에 결혼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융은 취리히 의과대학의 교수가 되면 유명세를 갖게 된다. 이 시기에 오스트리아 빈의 정신의학과 프로이트를 만난다. 융과 프로이트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프로이트보다 19살이나 어린 융이였지만 굉장히 친했다. 둘이 만났을 당시엔 융 또한 자리를 꽤 잡고 있고 어느정도 인정을 받은 상태였다. 대등한 입장이라고해도 무관한 교우 관계였다. 프로이트와 함께 미국 여행을 갔었다. 하지만 미국 여행 이후 사이자 급격히 나빠져서 그들의 우정에 금이 갔다. 여행 속에서 느낀 견해 차이로 융 역시 갈등을 안게 되었다. 아들러와 마찬가지로 성 이론에 대한 차이가 컸다. 결국엔 결별의 길을 택하게 된다. 융과 프로이트의 7주간 미국 여행이 결별에 더 빠른 선택을 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프로이트와 심리학에 관해 이야기를 하게 되면 방 전체가 큰소리로 울릴 정도의 심한 논쟁을 펼쳤다고 한다.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융은 프로이트가 없었더라면 심리학 분야의 문제 해결을 풀지 못했을 거라고 인정했다. 프로이트와 결별 후, 융은 취리히 의과대학을 사임했다. 오랜 우정의 결별이 힘들었는지 학문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일시적인 고립에 빠지게 되었다. 융의 제자들 중에서도 욜란데 야코비(1890~1973)와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1915~1990)이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이론들 중 가장 중요한 이론 3가지만 소개하겠다.
▶에난티오드로미
심적 대극의 반전 형상으로 시간이 흐르면 무의식의 반대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주로 인생 후반기에 일어나는 급격한 심리적 변화를 가리킨다.
▶무의식
자아에 속하지 않으며 연관되지 않고 있는 모든 심리적 경향과 내용을 말한다.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으로 나뉘는데 개인의 출생 이후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개인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는 것을 개인무의식이라 하고 선천적인 것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류 보편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은 집단무의식이라 한다.
▶상징원형은 상징을 통해 그 모습을 나타낸다. 상징은 압축파일인 것이고 원형은 인물이 아닌 신화적 과정이다. 예를들면 우리 민족의 단군신화나 평화의 수호자 등과 같은 거다. 상징을 3가지로 나뉘었다.1) 꿈의 상징자기 상징들을 꿈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2) 종교상징종교의 역사를 보면 당시 인간의 정신 활동을 유추할 수 있다는 종교 상징을 통해 진리를 나타내는 것이다.3) 만다라 상징통합된 우주를 상징하는 통합상징이라고 하는 것으로 종교 의레에 쓰이는 거행할 때 쓰이는 상징적인 원 또는 사각형의 그림을 가리킨다.1922년에 취리히 호수 근처 볼링겐 마을에 설계와 공사에 직접 참여하여 작은 별장을 지었다. 편의시설인 수도와 전기는 일부러 배제하여 지었다. 유대인이라 이유로 독일에서 망명을 떠나야만 했던 프로이트 포함한 여러 심리학자들과 달리 비 유대인이라 여전히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독일 학계에서 노골적인 친나치 입장으로 선회해 자연스레 나치 협력자, 반유대주의자로 여겨졌다. 나치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오해할만한 발언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1939년 세상을 떠난 프로이트를 “프로이트라는 이름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정신사에서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름” 이라고 추모를 남겼다. 1944년 69세의 나이로 사고를 당하면서 다리가 부러지고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심근경색 증상이 한 번 더 오면서 3년 뒤 한 번 더 병원 신세를 지게 됐고 회복 후에는 다시 연구에 돌입했다. 73세의 나이에 1948년 취리히에 C.G. 융 연구소를 서립하게 되었다. 그의 마지막 저서는 1957년도인 5년간 집필 해서 82세에 만든 자서전이다.
1955년 취리히에서 80세 생일을 맞아 축하 행사를 맞이했다. 하지만 그 해 말에 부인 엠마가 사망하게 된다. 그러면서 융 또한 급속도로 몸이 안 좋아지면서 1961년 6월 6일 저녁 그의 자택에서 사망하게 된다.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리학_상담과 심리치료(2) (2) 2022.10.01 심리학_상담과 심리치료(1) (0) 2022.09.13 심리학_심리검사가 갖추어야 할 요건 및 심리검사(2) (0) 2022.09.12 심리학_심리검사가 갖추어야 할 요건 및 심리검사(1) (0) 2022.09.11 심리학_심리학자 아들러 (2) 2022.09.07 심리학_심리학자 프로이트 (0) 2022.09.06 심리학_유명한 심리학자 간단 소개 (0) 2022.09.05 심리학_정서심리학1 (0) 2022.09.04